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milhoon@hanmail.net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한국의 3차 FX 사업 때문에 F-35A를제작하는 미국의 록히드마틴사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F-15SE를 내놓은미국의 보잉사는 다 잡은 고기를 놓쳐버렸다. 9월 24일 보잉의 F-15SE
를 단독후보로 받은 방추위가 방사청의 F-15SE 선택을 부결해버린 것이다.

방추위 결정이 있기 전 역대 공군총장들은 F-15SE 선택은 부당하다고주장하였고, 공군은 예산 압박과 전력유지를 위해 방사청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3차 FX에 대해서는 방사청에위임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가 위원장을 맡고 국방부와 방사청 합참의 고위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 방추위가 방사청 결정을 뒤집었으니 만만찮은 후폭풍이 불전망이다. 한편으로는 단독후보로 상정된 F-15SE의 가격을 더 깎거나
KFX사업에 유리한 조건을 받아내기 위해, 또 F-35A를 제작하는 록히드 마틴에 더 가격을 낮출 기회를 주기 위해 한번쯤 판을 흔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으니, 전략적으로 잘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보잉으로서는 허무할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보잉은 무에서 유를창조했다. 한국 전투기 시장은 세계 시장의 바로미터다. 한국이 F-16을선택하면 많은 나라가 F-16을 선택한다. 한국이 F-15를 선택해 주었기

에 보잉은 싱가포르와 사우디아라비아에도 F-15를 판매할 수 있었다. 한국 시장은 간단치 않다는 것을 보잉은 알아야 한다. 보잉은 KFP 사업에서도 99% 승리를 확보했다가 록히드 마틴에게 역전패한 경험이 있다.
한국의 전투기 레이스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이 레이스에서 F-15SE가 1차적으로 승리했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받고 있는 예산 압박은 만만치 않다. 빠른 시간 F-35A와 유로파이터 타이푼이 8조 3,000억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그리고 F-15SE가 가격을 추가로 더 내려 버리면, 최종 승자는 다시 F-15SE가 될 가능성이 높다. F-15SE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패배를 당하더라도 한국 FX 경쟁에서의 주인공은 F-15SE라고 본다.



2009년인가? 내가 처음으로 F-15SE를 접한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2009년쯤이라고 해두자. 그때는 3차 FX를‘차기 FX’정도로 불렀다. 그전 FX 사업에서 40+20대의 F-15K를 공급한 보잉이 한국의 차기 FX 사업에 스텔스 기능을 덧붙인 F-15 사일런트 이글을 제공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웃었다. 곁에 있던 많은 국방 마니아들도‘웃기고 있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공군을 아는 사람들의 관심을 전부 스텔스기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미국은 스텔스 기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를 내놓았다. 미 공군은 전통적으로‘하이-로 믹스(high low mix)’라고 하는 고저(高低) 배합으로 전투기를 구성한다. 전투기는 적기와 싸울 수도 있고 지상에 있는 적군과 싸울 수도 있다. 하늘을 날아가는 적기와 지상에 있는 적군 가운데 더 상대하기 어려운 쪽은 어디일까.
적기다. 적기는 3차원의 공간을 날아다니면서 공격을 해오기 때문에 상대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다. 지상의 적은, 설사 기동부대라고 할지라도, 아군기가 공격을 하면 한 자리에 멈춰 서서 대응을 하니 전투가 시작되면 고정 표적이 된다. 2차원의 표적인 것이다. 면에 고정된 2차원의 지상 표적보다는 공간인 3차원을 날아다니는 이동표적을 공격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그래서 적기는‘하이’로 부르는 고급 전투기로 공격한다. 적기는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니 적기를 요격하는 아군기는 더 자유자재로 날아다녀야 한다. 그러니 많은 연료를 소비한다. 적기를 향해 쏜 미사일도 이리저리 도망치는 적기를 향해 정교하고 속도 빠르게 추적해야 하니, 매우 정밀해야 한다. 적기를 전문으로 잡는 전투기를 공대공(空對空) 전투기, 제공기 등으로 부르는데, 이러한 전투기가 바로 하이 급이다.‘하이’급은 많은 연료와 무장을 탑재하니 덩치가 크다.
지상 표적이 많을까, 날아다니는 적기가 많을까. 인간은 땅에서 살기에 땅에 모든 것을 설치해둔다. 아군기를 요격하기 위해 날아온 적기(적군에서 본다면 공대공기이고 제공기이다)도 결국은 지상에 내려야 한다. 그러한 적기에 연료와 무장을 공급해주는 기지를 폭격해 버리면 내려간 적기는 다시는 떠오르지 못한다. 따라서 전투기의 대(對)지상 공격은 적기를 요격하는 것보다 양적으로는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지상 표적은 적기에 비해 공격이 수월하니‘로’라고 하는 저급 전투기를 사용한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전투기를 공대지(空對地) 전투기 또는 전폭기라고 한다. 전폭기도 적기와 조우할 수가 있으므로 자기 방어를 위해 적기를 공격하는 공대공 무기를 장착한다. 그래서 전폭기는 공대지, 공대공 겸용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다목적기’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주목적은 고정된 지상 표적 제거이니 기동량이 많은 제공기보다는 작게 만든다. 대형이 아니라 중형인 것이다.



미 공군은 하이와 로의 비율을 1대 3정도로 유지한다. 스텔스기가 나오기 전 대형의 제공기는 F-15였고, 중형인 전폭기는 F-16이었다. 두 전투기의 차이는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F-16에 탑재하는 엔진 두 개를 탑재한 것이 F-15다. 같은 개념으로 미국은 스텔스 기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 준비에 들어갔다. 대형 제공기로 F-22, 중형 전폭기로 F-35를 만들었다, 두 전투기의 차이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F-35에 한 개 탑재한 엔진을 두 개 탑재한 것이 F-22라고(엄밀히 말하면 이는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개략적으로는 맞다).
미 공군이 하이-로 개념으로 5세대 스텔스 기 확보에 들어가자, 4세대 전투기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F-15와 F-16은 모두 사라질 것만 같았다. 때문에 두 전투기 제작사는 스텔스기를 사기 어려운 후진국을 공략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아졌다. 그러한 때 한국이 차기 FX 사업을 검토했다. 한국은 배짱만큼은 항상 두둑한 나라이고 스텔스에 대한 관심이높았으니 차기 FX는 스텔스기여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미국은 대형 제공기인 F-22는 전략무기로 간주해 전혀 수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형 전폭기인데 공대공 기능도 가능한 다목적기 F-35만 동맹국에 한해 수출하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F-22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었다. 그만큼 한국은 자신만만했던 것이다. F-35도 마땅찮아 하던 시점에 보잉인 무니만 스텔스인 F-35SE를 내놓겠다고 했으니 사람들은 모두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잠자리 같은 곤충과 독수리 같은 새는 모두 하늘을 날아가지만 둘은 완전히 다른 생물이다. 비유해서 말하면 그때의 한국인들은 비(非)스텔스기와 스텔스기 차이를 그 정도로 보았다. 곤충 중에 상당히 큰 놈이 있어 새처럼 난다고 해서 그는 새가 되지 않는다. 날이 추워지면 결국 알을 낳고 죽어야 한다. 사람들은 F-15SE를 그렇게 본 것이다. 스텔스가 될 수 없는 것이 스텔스 흉내를 냈다고…
정통 스텔스한테 당할 수 있으니‘스텔스’란 말을 붙이지 못하고‘사일런트’란 말을 붙였다고 본 것이다. F-15SE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F-35A 시제기가 나와 시험비행을 하면서 스텔스 신화가 빠르게 벗겨져가기 시작했다.
투명인간도 완전히 투명하진 않다. 투명인간이 지나가면 그가 있는 부분은 시야가 흐려진다. 아무리 깨끗한 유리창이라도 유리창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풍경 차이가 다른 것처럼, 투명인간이 지나갈 때와 지나가지 않을 때는 차이가 있다. 그러한 투명인간에게 물감을 섞은 물대포를 쏜다면 그는 당장에‘색인간’이 돼 붙잡혀 버린다.



스텔스기가 그런 존재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레이더에 완전히 안 잡히는 게 아니라 기존 전투기보다 작게 잡힌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전투기 후면으로는 강력한 엔진 열기가 나오는데, 열기는 쉽게 탐지된다. 적기를 추적하는 미사일도 적기 후면에서 나오는 열기만 따라가게 만들었는데, 이를‘열 추적 미사일’이라고 한다. 아무리 스텔스 처리를 해도 엔진의 열기만을 감출 수 없다.
따라서 레이더를 전방이 아니라 측방이나 후방으로도 쏘면 아군의 레이더망을 막 통과하거나 통과한 스텔스기를 잡아낼 수가 있다. 옆이나 뒤에서 잡은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잡은 다음에는 얼마든지 격추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 스텔스 기는 고스트(ghost)가 아니라 투명인간인 것이다.
레이더에 작게 잡히는 것이 스텔스기이니 레이더의 기능을 증폭시키면 스텔스기도 잡아낼 수 있게 된다. 스텔스와 정교한 레이더는 널뛰기를 한다. 창이 날카로워지면 방패가 강력해지고, 방패가 강력해지면 다시 창이 날카로워지면서 서로의 장점이 상실되는‘모순(矛盾) 관계’가 일어나는 것이다. 널뛰기가 거듭되면 창과 방패의 값만 다락같이 올라가 버린다.

F-35A는 그러한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F-35A를 제작하는 록히드마틴은 F-35A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이 전투기 도입국가를 늘이려고 했다. 제작 대수를 늘려 개발비를 분산시킴으로써 가격을 낮춰 보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쉽게 도입국이 늘어나지 않았다.
스텔스기는 강력한 적과 싸울 때 효과가 있다. 상대가 되지 않는 적과 싸우는 데는 부적절하다. 비유하면 모기를 잡기 위해 보검을 휘두르는‘견문발검(見蚊拔劍)’이다. 모기를 잡으려면 값싼 파리채가 제격이지 보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F-35A는 스텔스기이기에 출격 비용이 비스텔스기보다 비싸다. 초전에 격파해 버릴 수 있는 레이더망을 가진 적에게 스텔스기 공격을 퍼붓는 것은 전형적인 견문발검이 된다.
적 레이더망을 없앤 다음에는 비스텔스기 공격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미국은 먼저 만든 F-22를 단 한번도 실전에 투입하지 않았다. 2003년 이라크 전쟁과 그 전의 아프간전쟁, 2011년의 리비아 공습 등은 전부 비스텔스기로 치렀다. 왜 그랬을까. 비용대 효과를 따졌을 때 비스텔스기로 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스텔스기는 소련 같은 초강대국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이라크 정도는 비스텔스기로 얼마든지 깰 수 있다. 그런데 소련은 무너졌고 중국이 소련만한 적이 되기엔 부지하세월이다. 이것이 미국의 딜레마가 되었다.
비스텔스기만 갖고 있던 시절에는 적의 강력한 레이더망 파괴가 불가능했던가. 아니다. 그때도 방법이 있었다.‘패키지 스트라이크(Package Strike)’라고 하는‘대규모 편대군(群) 공격’이 그것이다. 이 전술은 다양한 공군기를 출격시켜 적 레이더망을 파괴하며 들어가 적기와 적진을 초토화하는 것이다. 적 레이더망을 부순 다음에는 비스텔스기로 공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니 군을 아는 사람들은 비스텔스기를 이용한 이 전술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



높아진 스텔스기의 가격 때문에 헉헉 거리던 미국은 다시 비스텔스기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생각한 것이 제공기와 전폭기를 배합하는 하이-로 믹스처럼 스텔스-비스텔스기를 배합하는 것이었다. 스텔스기는 소량만 보유해 적 레이더망을 부수거나 강력한 적기를 잡을 때만 쓰고, 그 임무가 끝나면 비스텔스기로 대형 공격을 퍼부어 승부를 결정짓는 것을 검토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미 공군에서 사라질 것 같던 비스텔스기들이 살아남게 되었다.
그리고 스텔스기에 적용한 기술들이 비스텔스기로 옮겨지면서 F-15SE 같은 것이 계획되었다. F-15는 개발비를 다 건졌기에 스텔스화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많지가 않다. F-15SE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F-15K와 거의 같은 가격으로 3차 FX 사업에 들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배포는 작아졌다. 일본이 F-22가 아닌 F-35A 도입으로 돌아선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다. 그제서야 한국은 F-22 도입이 불가능하고, F-35는 만능이 아니며 일본도 F-35를 고가에 도입한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은 일본 안에서의 F-35A 조립하는 것을 받아냈기에 상당한 고가를 지불하기로 했다.
3차 FX 사업으로 한국 공군이 내심 원하는 것은 대형 전투기이다. 그러나 제공기는 아니다. 한국 공군이 생각하는 3차 FX기는 공대공, 공대지 전투를 모두 할 수 있는 대형 다목적기다. 서방권에서 그러한 전투기는 F-15E밖에 없다. 미국 보잉은 F-15를 대형 제공기로 개발해 A형과 C형을 만들어냈다. 그리도 전폭기로 개조한 E형은 제작했다. F-15E에서 F-15K와 F-15SE가 파생됐으니 보잉은 다목적기를 원하는 한국 공군의 요구를 채워줄 수 있었다.
한국의 고민이 시작된 것은 지금부터다. 박근혜 정부는 계획한대로 세금이 걷히지 않아 고민에 빠져 있다. 대통령 공약으로 약속한 복지예산 지출도 줄이겠다고 했다. 따라서 3차 FX 사업에 배정한 8조 3,000억원을 증액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스텔스 신화는 무너져가고 예산 압박은 커진 것이다.
대형 전폭기냐 스텔스기냐의 기로에서 한국은 예산 압박을 크게 받았기에 스텔스 기능을 약간 덧붙인 대형 전폭기 F-15SE로 기울어졌다. 놀림거리였던, 사일런트 이글은 기적을 만든 것이다. 공군은 스텔스기를 원했지만 가격 압박을 인정해 F-15SE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 결심이 방추위의 부결로 잿더미가 되고 F-35A가 기사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가격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F-35A의 미래는 없다. 기회는 잡았지만 록히드 마틴은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큰 숙제도 함께 떠안은 것이다. 방추위의 부결로 공군은 보잉 이상으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공군은 3차 FX 사업이 자꾸 늦어지는 것이 고통이다. 늦어지면 그만큼 오래된 전투기를 사용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전력 손실로 이어진다.
만에 하나 F-35A를 8조 3,000억원에 도입하기 위해 60대가 아닌 40대로 한다면 공군은 인원 배정에 큰 고통을 받는다. 전투기 한 대에는 보통 여섯 명의 조종사가 있다. 따라서 20대가 줄어들면 정예 조종사 120여명을 줄여야 한다. 정비사와 무장사도 비슷한 비율로 줄여야 한다. 한번 줄어든 인원은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공군은 수많은 계산을 해서 3차 FX에서는 60대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뒤집을 수는 없다.
따라서 현명한 답은 록히드 마틴이 60대를 8조 3,000억원에 내놓든가, 아니면 보잉이 더 가격을 낮추는 것에 있게 된다. 이러한 결정은 빨리 이뤄져야 한다. 필자는 이번에 스텔스기를 도입하지 못하면 다음 4차 FX에서 해도 된다고 본다. 방추위 부결이 3차 FX 사업을 2~3년 연기시키는 결과만 낳는다면 그 책임을 방추위 위원들이 져야 한다. 방사청과 국방부는 조속히 3차 FX 사업을 마무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