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승 박사
서울교대 외래교수
본지 편집위원장
seokseung333@hanmail.net

 집권 3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김정은정권이 지난 12월에 전격적으로 단행한 장성택의 처형은 한반도정세에 직간접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내부에서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장성택과 연緣이 닿아있던 당-정-군의 고위 간부들은 물론이고 친인척들조차도 제2, 제3의 ‘희생양’으로 포함될 것인가 여부를 놓고 공포심을 느끼는 가운데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사안事案으로 인한 내부 정정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체제결속을위한 수단으로 김정은이 외부로 표출시킬 가능성이 높아감에 따라 우리 관계당국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가운데“만의 하나” 일어날 지도 모를 기습적인 대남도발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한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한반도 이해관련국들, 특히 유일 맹방盟邦임을 자처한 중국마저도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김정은정권의 ‘막가파식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가운데 유사시에 대비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내부의 각종 매스컴, 그 중에서도 케이블방송 등에서는 ‘장성택처형’을 소재로 하여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름대로의 각본脚本을 제시하는 가운데 ‘소설小說 같은 이야기’를 누에가 뽕잎을 먹고 실을 뱉어내는 것처럼, 정말 중구난방衆口難防 식의 진단과 전망을 내놓고 있어 오히려 현실인식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북한체제는 지난 2009년 김정은이 제3 공식후계자로 등단登壇하기까지 그의 사진조차도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스위스 베른 공립중학교에 다니던 그의 어린 시절 사진이나 일본에서 한국의 한 청년을 김정은이라 주장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우리 국민들 상당수는 그 많은 예산과 인력을 가지고 왜 “김정은의 사진” 조차도 구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비판이 일기도 하였고, 이는 마치 “관련기관의 무능함”을 대변하는 것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정권의 속성 내지 특성을 충분히 인지한다면, 이런 섣부른 비판과 문제제기는 ‘아마추어’로서 제기할 수 있는 것일 뿐, 진치眞値(Real Value)와는 상당한 갭이 있는 판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체제특성상 내부에서 일어난 일의 외부유출이나 전달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를 위해 이중삼중의 거미줄과 같은 감시-통제장치를 구축하여 발동시키고 있기 때문에 우리식으로 판단하고 추정하면 ‘진치’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결과만을 도출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얘기가 좀 길어졌지만, 이번 장성택 처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관계당국의 이른바 ‘휴민트나 시진트’에 의존해야 하는 북한정보나 첩보수집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섣부른 판단이나 분석, 전망”은 오히려 예기치 않은 후과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김일성 가家’의 제3대 권력세습자인 김정은이 고모부인 장성택을 즉결처형한 것은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한 전력前歷을 “거의 그대로 따라 배우기차원에서 행한 것이라 진단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구체적 정황은 좀 더 시간을 두고 각종 방증자료를 토대로 파악해도 결코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즉, 이번 숙청은 이른바 ‘백두산줄기’의 혈통임을 자처하면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로 이어진 유일 영도체계”만을 인정하는 북한의 숙청역사가 ‘장성택’이라는 희생양을 계기로 드디어 막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찍이 김일성은 자신의 정권창립에 막대한 공헌을 하였던 박헌영을 6·25전쟁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미제의 스파이’ 혐의를 씌워 처형한 것이 시초였으며, 이후에는 남로당 출신인 이승엽과 이강국도 같은 혐의로 처형함으로써 남로당의 싹을 제거했다. 이어 1956년에는,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을 통해 개인숭배와 독재문제를 제기한 최창익과 박창옥, 윤공흠 등을 반당·반혁명 종파분자로 몰아 숙청함으로써 자신의 유일 영도체계를 확고히 구축했다. 이후에는 자신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던 갑산파조차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숙청해 버렸다.

 이런 숙청놀음은 김정일 시대에도 예외 없이 되풀이됨으로써 부전자전父傳子傳의 대물림을 나타냈는데, 김정일은 김일성의 3년상이 끝난 1997년 ‘고난의 행군’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은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서관히 당 농업비서를 간첩죄로 몰아 공개 처형하였다. 특히 비사회주의적 요소를 검열한다는 명목으로 ‘심화조’를 결성해 고위간부와 가족 등 2만 5천여명을 숙청함으로써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했다.

 이처럼 이들은 자신들만의 독재권력 유지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되면 설령 ‘로열패밀리’라고 해도 가차없이 쳐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김일성의 친동생이자 북한정권의 개국공신이라 할 수 있는 김영주는 김정일과 후계경쟁을 펼쳤다는 이유로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유배됐으며,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과 김영일은 외교관 감투를 쓰고 사실상 국외로 추방되었다.

 이번의 장성택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북한정권의 ‘피의 숙청’은 김정은시대에도 예외없이 이어지고 있는 바, 이번에 숙청이 확인된 장성택과 리영호 군 총참모장을 비롯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 등 2년 전 김정일의 장례식 때 운구차를 호위한 김정일측근들 가운데 대부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특히 북한은 장성택에 대한 판결을 보도하면서 오래전부터 반역행위를 할 정치적 야심을 갖고 있었으나 김일성, 김정일시대에는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 양봉음위’ 하다가 혁명의 대代가 바뀌는 시기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밝힘으로써 지난 2년간 드러난 화폐교환조치의 실패 등 경제정책의 난맥상의 책임 등 무려 20가지가 넘는 죄목罪目을 장성택에게 씌웠다.

 이런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은 일찍이 김일성이 남한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한 남로당계와 중국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한 연안파를 숙청하고, 1960년대는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갑산파를 제거해 1인 독재체제를 완성한 것과 같은 궤軌를 탄 것이라는 가정을 가능케 하며, 그 중에서도 남로당계 박헌영 숙청은 1인 독재의 잠재적 위협인 ‘2인자’의 제거라는 점에서 장성택 숙청과 여러 모로 비교된다.

 또한 농업담당 비서 서관히의 처형을 계기로 하여 심화조사건을 진두지휘하였던 김정일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도 간단없이 지속될 김정은에 의한 숙청작업이 그의 어린 나이와 미숙한 리더십 등으로 인해 그 대상이 어디까지, 어느 규모로 미칠 것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며, 아마도 김일성이나 김정일보다 그 규모가 커지고 강도가 셀 것이라는 짐작으로 귀추를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대를 이은 피비린내 나는 숙청작업’이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그 여진餘震을 잠재우기 위해 북한당국은, 얼마 전 국방위원회 서기국 명의로 청와대 안보실에게 전달했던 위협공갈이 언제든 현재화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결코 빈 말을 하지 않는다”는 북한당국의 강변强辯을 “강건너 등불을 보듯” 한다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군-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다시 한번 분단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만반의 대응태세를 확립해야 할 필요가 그 어느 때 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잠언箴言이 새삼 피부에 와닿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