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귀근
연합뉴스 국방부 출입기자
threek@yna.co.kr

 “우리나라가 로우(Low)급 전투기를 수출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됐던 대한민국이 이제 세계 항공산업 7위라는 원대한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12월 12일 우리나라 항공산업에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T-50고등훈련기를 바탕으로 개발된 경공격기 FA-50 24대 이라크 수출 계약이 이뤄진 날이다. 이 날은 북한의 40년 권력 2인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처형 소식이 밝혀지면서 온 나라가 들썩였지만 경공격기 수출이라는 낭보가 전해지자 관련 주가도 들썩거렸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수출 합의 역사적인 순간에 참석했던 한국항공우주산업(KAI)관계자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4년여간의 발품 끝에 계약이 성사됐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일부 관계자들은 총리실에서 이뤄진 수출 합의 발표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항공기는 최첨단 산업으로 꼽히는 기계, 전자제어, 통신 등이 융합된복합산업으로 꼽힌다. 관련 산업의 기술이 최정점에 도달했을 때 항공기라는 하나의 제품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항공산업은 사실상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몇몇 선진국들의 전유물에 해당했다. 지금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항공산업이 주춤한 사이 중국이 매섭게치고 올라오고 있는 형국이다.

 한 국가의 경쟁력은 항공기·잠수함 수출로 평가
 필자는 과거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조선소를 자랑하는 한 선박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업체는 당시 막 잠수함을 건조하려던 초기 단계였다.‘선박 업체들이 왜 잠수함 건조에 매달리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 업체 관계자의 대답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는“외국에 선박을 팔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잠수함 건조 경력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잠수함 건조 경력을 갖췄는지를 먼저 평가한다”고 말했다.

 잠수함 건조 경험이 있는 회사가 만든 선박이라야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잠수함이 선박 산업 기술의 집약체이기 때문이다. 잠항시 엄청난 수압을 견디기 위해 잠수함 선체를 늘리는 기술, 적 잠수함과 구축함에 탐지되지 않도록 소음을 최소화하는 기술, 물방울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프로펠러 제작 기술 등등이 어우러진 것이 잠수함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독일 하데베(HDW)사로부터 209급 잠수함 1차분 3척을 주문하면서 잠수함 보유국 대열에 올라섰다. 1번함(장보고함)을 독일에서 건조했고 2번함(이천함)부터는 독일에서 부품을 받아 대우중공업에서 조립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 말 현대중공업을 사업자로 선정해 214급 잠수함 사업을 시작했다. 독일의 HDW사로부터 재료와 주요 장비를 가져와 한국에서 건조했다. 독일에서 잠수함을 건조해 도입하는 사업을 시작한지 13년만에 이뤄낸 쾌거로 독일 HDW사 관계자들도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은 2011년 인도네시아에 1,400t급 잠수함 3척을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독일에 잠수함 3척을 주문해 잠수함 사업을 시작한지 24년 만에 잠수함 수출국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이는 삼면을 바다로 두고 전통적으로 배를 만들어 해양을 누비던 선조들의 DNA(유전자)가 고스란히 대물림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선박 건조 1위를 달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이코노미스트지는 11월 23일 최신호에서‘깊을수록 더 좋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심해 시추선을 제작하는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의 상황을 전하며 중국을 따돌린 비결을 분석했다. 이 매체는 세계 1위인 한국의 조선 산업이 고부가가치, 첨단 기술 선박 건조에 주력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항공산업은 최첨단 과학기술이 융합된 시스템 산업으로, 정보통신과 기계, 소재, 전기전자, 화학 등 모든 기술분야의 정점에 있다. 산업파급 효과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들어 가정용 전자레인지는 1940년대 레이더 고주파를 활용해 개발했고, 인터넷은 1960년대 군사용 네트워크 밀네트(MILNET)에서 유래됐다. 차량용 네비게이션과 GPS(인공위성위치정보)는 군용 GPS 위성 기술에서 발전된 사례이다.

 현재 KAI에서도 최근 개발 중인 항공기용 첨단 기술을 활용해 다른 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한 창조경제형 스핀-오프(Spin-off)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예를들어 수리온 헬기 조종사 헬멧장착시현장치(HMD)의 영상융합입체화 기술과 3차원 입체화 시현기술은 의료, 교육, 게임시장 등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항공산업 세계 7위 목표지만 시장점유율 0.5% 수준
 정부가 지난 2010년 발표한 10개년‘항공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보면 오는 2020년까지 생산 200억 달러, 수출 100억 달러를달성해‘글로벌 G7’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비전 달성을 위해서는 항공기 수출산업화를 통해 국외로부터 수출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0.5%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 항공우주산업 규모는 2000년 11억 달러에서 2012년 27억 달러로 성장했다. 항공우주산업의 대표 주자인 KAI의 매출도 1999년 설립 때 1조원 미만에서 올해 1조9천억원 수준으로 2배 이상 크게 성장했다. 최근 2~3년간 KT-1 기본훈련기와 T-50 고등훈련기, 수리온 헬기 개발과 수출 성공, 한국형 기동헬기(KUH) 양산 및 보잉, 에어버스에 대한 민간 여객기 구조물 수출 물량 증가로 앞으로 10년간은 획기적 도약을 위한 전환점에 서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항공산업은 1960년대 L-19 연락기와 F-16 전투기 창정비를 수행하면서 시작됐다. 1970년대 후반 500MD 헬기 조립생산과 1980년대 초 F-5 제공호 조립생산, 1990년대 KF-16 부품국산화 면허생산단계를 거치면서 산업화의 모양을 갖췄다.

 국내 항공산업이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 후반 KT-1 기본훈련기 독자개발, 1990년대 중반 T-50 고등훈련기 개발에 착수하면서 산업화의 가속도가 붙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T-50 개발은 세계 12번째 초음속기 개발 국가 진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00년대 들어 KAI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항공산업 육성이 가능해졌으며 KT-1은 2001년 인도네시아, 2007년 터키, 2012년 페루 등에 모두 77대가 수출됐다. T-50도 인도네시아에 16대가 수출되어 국산 항공기의 본격적인 수출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는 T-50 인도네시아 수출로 세계 6번째 초음속 항공기 수출 국가가 됐다.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이 2006년 개발에 착수되어 2012년부터 군에 전력화되어 헬기 분야에서도 독자적인 개발 능력을 갖추게 됐다. 우리나라는 수리온 개발로 세계 6번째 헬기 개발국이 됐다.

“공군, KF-X 개발시 300대 전력화 가능”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항공기 수출산업화를 위해서 몇가지 선행돼야 할 과제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국형 전투기(KF-X)와 소형무장헬기(LAH), 소형민수헬기(LCH) 사업 추진, 완제가 수출확대 등을 선행 과제로 꼽고 있다.

 KF-X 개발사업 지난 2001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2015년까지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합참은 이듬해 11월 공군 주력기인 KF-16보다 약간 상위급의 전투기 120여 대를 개발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했다. 하지만 2003년 한국국방연구원(KIDA)과 200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연구용역 결과를 내놓으면서 군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해졌다.

 당시 KDI는 개발비에 10조 3천억∼10조 9천억 원이 소요되며 대당 양산 단가는 704억 원에 달한다는 추산과 함께 개발비용 대비 산업 및 기술 파급 효과가 미약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다 2009년 방위사업청이 건국대에 사업타당성 분석을 의뢰한 결과 경제적 타당성을 갖췄다는 정반대의 결과를 내놓으면서 사업 추진에 다시 탄력이 붙었다.

 건국대는 KF-X 개발비를 5조 600억 원으로, 양산 단가를 502억 원으로 각각 추정했다. 더욱이 KF-X 국내 연구 개발시 F-18급 이상 전투기를 직구매할 때보다 2조원 이상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30년(연평균 200시간 기준)을 사용할 경우 유지비 측면에서 9조원 가량의 이익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방사청은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2012년 1월 차기전투기(F-X)사업과 KF-X 사업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F-X사업 입찰 공고를 냈다. F-X 사업을 통해 전투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때문에 F-X 기종 선정을 위한 평가기준(가중치) 중 경제·기술적 편익을 18.41%로 높게 잡았다. 다른 항목 가중치는 획득비 15%, 운영유지비 15%, 임무수행능력 33.61%, 군 운용적합성 17.98% 등이었다.

 KAI는 KF-X 사업이 확정되면 국내 120대 양산, 수출 200여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0년간 후속지원 등 국내에서 발생하는 생산 규모가 53조원, 산업 및 기술 파급효과 100조원, 일자리 창출효과 연인원 28만명으로 예측하고 있다.

 공군의 한 관계자는 “만약 KF-X 개발사업이 확정되어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공군은 300대의 KF-X를 전력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군이 전력화 대수만으로도 사업 타당성은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FA-50 수출, KF-X 수출 가능성도 보여줘
 우리나라가 이라크에 FA-50 수출계약을 성사시킨 가장 큰 의미는 한국이 KF-X를 개발할 경우 다른 나라에 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있다. KF-X가 KF-16급의 전투기보다 약간 상향 버전으로 생산한다는 계획이기 때문에 충분히 수출 틈새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F-16 전투기 생산은 중단되어 있기 때문에 KF-16급인 KF-X의 수출 시장은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F-16 전투기의 구매 여력이 부족한 아프리카와 중남미, 동남아, 중앙아시아, 일부 유럽국가 등을 대상으로 판촉 활동을 한다면 수출 성사가 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주로 유럽산 무기를 중개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유럽시장에서 KF-X 수출 판로가 분명하게 있다”면서“최소한 200대는 수출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국회 국방위원들 사이에서도 KF-X 개발에 상당히 우호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어 일단 희망은 보인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가 T-50을 개발하겠다고 나섰을 때 해외 수출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 공군에서 소요를 충당하고 극히 일부만이 해외 수출도 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T-50을 개발하고 판촉 활동을 벌인 결과 생각지도 않은 틈새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것은 이라크에서 나타났다. KAI의 한 관계자는“제품을 만들어 놓고 보니 판로가 보이더라”고 말했다. 현재 T-50계열의 항공기를 직접적으로 타진하는 국가는 아프리카 2개국, 동유럽 1개국, 동남아시아 1개국 등이다.

 고등훈련기 1천대를 구매할 계획인 미국도 큰 시장이다. KAI 측은 내년부터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우수한 제품이 있는 이상 판촉 활동도 자신감 있게 적극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FA-50이라는 로우(Low)급 전투기 수출에 이어 미들급 전투기인 KF-X를 개발해 수출할 날을 기대해본다. KF-X가 개발되어 수출되는 날 우리 항공산업은 세계 5~7위로 우뚝 솟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