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이 처형된 후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자, 통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당연히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기대도 늘어났다. 한 외국 기업인은 통일이 되면 한국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통일한국이 세계적인 경제성장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암시다. 나는 이 기대의 맹점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헛된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과 혼란을 맞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이다. 박 대통령이 이야기한 통일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북한급변사태는 평화통일이나 평화통일로 가는 전 단계를 지칭하는 것 같다. 과거에는 통일하면 전쟁내지는 혼란부터 떠올렸으나, 지금은 북한 붕괴에 의한 한국 주도의 통일, 이름하여 흡수통일부터 생각한다는데 대해 이견異見이 적은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인식에 대해 강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담론 뒤에는 ‘평화통일은 공짜통일’ 또는 ‘공짜에 가까운 통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적잖은 국민들이 우리 주도의 통일은 공짜 내지는 공짜에 수렴하는 것이니, ‘통일을 하자’는 이기주의를 작동시켰다고 보는데, 이러한 이기주의가 결정적인 시기에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경고를 하고자 한다. 평화통일은 대단히 비용이 많은 드는 통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비용이 적게 드는 통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비평화적인 통일이 비용이 더 적게 들 수도 있다”고 답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나 전쟁에 준하는 경로를 통한 통일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평화통일은 공짜내지는 공짜에 수렴하는 통일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깨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인권을 보장하고 교육의 기회를 주며 여러 가지 복지 정책으로 최저 생활을 유지해주는 민주화된 선진국에 살다보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걱정할 필요가 적어진다. 민주화된 선진국에서도 ‘약육강식弱肉强食’과 ‘강자존强者存 약자망弱者亡’의 방정식은 존재하지만, 내 목숨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강자의 먹이가 되는 사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약자는 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선진화된 민주국가에서의 삶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비용을 거의 지불하지 않고’라는 말이다. 선진화된 민주국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기반으로 하기에, 자유를 누리는 비용은 대개 ‘가진 자’들이 부담한다. 따라서 선진화된 민주국가에서도 더 큰 자유를 누리는 것은 가진 자들이다. 하지만 법률에 따라 약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 준다. 이를 뒤집으면 약자들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거나 덜 지불하고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와 권리는 가진 자들이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기에 약자들은 상대적인 빈곤감에 빠진다. 이미 주어진 자유를 의미 없는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심해지면 주어진 자유를 가치 없는 것, 공짜로 주어진 것으로 보고 가진 자들이 누리는 자유를 보며 배 아파 하게 된다. 사람은 한 순간도 공기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런데 무진장으로 주어진 것이 공기이다 보니 공기의 가치를 놓쳐 마구 오염을 시키며 살게 된다. 그와 비슷한 현상이 자유에서도 일어난다. 이것이 제 발등을 찍는 매우 위험한 착각이기에 서양에서는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격언이 생겨났다. ‘자유는 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쟁취한 것이다’라는 중대한 경고를 하는 것이다. 그 대가는 생각 외로 막대하다. 이를 로마시대의 전략가 베제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로 표현했다. 모든 외침을 막아낼 수 있는 완벽한 전쟁 준비를 해놓았을 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는 대단히비싼 것”이라는 역설도 성립한다. 평화통일은 무엇인가. 김정은이 북한을 들고 그대로 우리한테 들어오는 것이 평화통일인 것 같다. 역사상 이러한 통일이 있었던가. 나는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것을 그와 비슷한 것으로 보고자 한다. 신라와 고려의 통합은 동서독 통일보다 더 부드러웠다. 그때는 왕조시대였으니 왕이 항복을 결심하면 모든 것이 끝날 시절이었지만, 이 통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기로 결심했을 때 가장 반발한 이는 차기 대권을 노렸던 마의태자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개성으로 가자 그는 금강산으로 향했는데, 이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을 것이다. 김정은이 경순왕 정도의 경륜이 있다고 보는가. 그런 사람이라면 그보다 훨씬 부드럽고 현실적인 장성택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혁명 직후 같다. 혁명 직후에는 부정부패를 숙청하는 대규모 사정이 벌어지는데, 북한의 모습이 그러한 것이다. 혁명을 한 이가 제3자에게 쟁취한 권력을 갖다 바친 적이 있는가. 사정은 자기 권력을 강화하는 첫걸음이다.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우리는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김정은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는 절체절명의 기회로 볼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 급변사태는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항거하는 세력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북한에는 김정은이 독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장성택 처형을 본 실력자들은 언젠가 자기도 저렇게 날아갈 수 있다고 보고 배신을 준비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불만을 묶어 일어나게 하는 선동가가 없다면 다 부질없는 일이다. 선동가가 있어 선동을 하더라도 김정은 권력 축출에 실패한다면, 오히려 김정은의 공포정치만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김정은은 우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북한은 그 동안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로부터 여섯 차례나 제제를 받았다(다음 표 참조). 유엔은 대북제재 결의안의 강도를 계속 높여 왔다. 유엔 회원국들은 이러한 결의안을 준수할 의무를 가진다. 처음 제재안이 나왔을 때는 지키지 않는 회원국이 있었지만제재안 채택이 늘어나고 미국이 그 준수를 강조하면서 결의안을 이행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좋은 예가 2013년 7월 파나마 정부가 쿠바와 거래하는 무기 부품을 싣고 자국 항구에 입항한 북한의 청정강호를 수색해 싣고 있던 무기 등을 압류한 것이다. 유엔 제재안은 생각 밖으로 구체적이다. ‘이러이러한 여권과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북한산 무기를 거래하는 인물이니 유엔 회원국은 입국시키지 말라’, ‘이러한 번호의 계좌는 북한이 무기 거래를 할 때 사용하는 것이니 이 계좌로는 절대 거래하지 말라’는 식이다. 이렇게 목줄을 조이면 북한은 돈이 마르게 된다. 돈이 있어야 김정은은 그를 따르는 세력에게 나눠주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그것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무기 등을 판매해 외부로부터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어려워지면 국내에 있는 부자를 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장성택을 2인자로만 봐왔는데 이는 단견이다. 장성택은 김정은을 이은 북한 2위의 재벌이었다. 재벌이면서 관료이고 정치인이며 군에도 상당한 세력을 가진 ‘넘버 2’의 실세로 보아야 한다. 통치자금이 달리는 1인자는 ‘2인자의 지갑’을 넘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갖가지 부정을 저질렀다”며 2인자를 가혹하게 날리고 그의 재산을 차지한다. 당연히 그가 갖고 있던 군력과 정치력도 빼앗아 버린다. 그리하여 힘이 강해진 1인자는 2인자로부터 뺏은 자금을 북한 경제를 일으키는통치자금으로 활용하게 된다. 지금 김정은이 직면한 두 가지 과제는 장성택의 재산을 뺏은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장성택을 부정과 부패의 원흉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정을 한 결과 부정부패가 사라져 북한 경제가 좋아졌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강력한 권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는 장성택 처형 후 북한은 내부 모순이 심해져 급변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하는데, 북한의 현실은 완전 반대로 김정은의 권력이 공고화돼 급변사태 가능성은 더욱 적어졌다는 것을 필자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가 일어나 반대세력을 규합한다면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런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이 이미 그러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막아 버렸기에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전형적인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여기서 필자는 “그러한 기대를 현실화하고 싶다면 수주대토守株待兎 하듯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반대세력을 규합해서 일어날 누군가를 만드는 공작을 하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북한 민주화 운동’이다. 북한에서 민주화 세력이 일어나게 하려면 올바른 정보가 들어가야 하니 ‘북한 정보화운동’부터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 북한이 무너지는 급변사태가 일어나고 그 결과 평화통일이 이뤄질 것이라 믿고 기다리는 것은 김정은이 권력을 공고히 하는 기회만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평화통일은 공짜나공짜에 준하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듯이, 평화통일을 원하면 손 놓고 가만히 기다릴 것이 아니라 북한 정보화운동부터 맹렬히 벌여야 한다. 통일은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는 것이라 우리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북한 뒤에는 중국과 미국 일본 러시아라는 이해관계가 걸린 나라들도 있으니 그들과의 관계도 큰 영향을 끼친다. 북한 정보화운동을 벌이면 북한은 이를 막기 위한 역공에 나선다. 그 공격은 이미 시작됐는데, 한국의 IT망을 통한 대남심리전, 사이버전이 그것이다. 북한은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수비를 해야 하니 우리는 북한 정보화운동을 펼치기 어려워지는데, 작금의 상황이 바로 그러하다. 이러한 상황을 바꾸려면 우리 체제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는 법률적인 재정비와 함께 금전의 증액을 수반한다. 이는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암시이다. 북한 정보화운동이 성공해 민주세력이 일어난다면, 북한은 1989년 ‘발칸의 도살자’ 차우세스쿠가 민주혁명으로 처형되는 루마니아 같은 사태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장성택 등을 비롯해 김정은 세력에게 당한 사람이 너무 많아,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들이 김정은을 가만두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김정은이 신라를 들고 고려에 항복한 경순왕과 같은 운명을 살 수가 없다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동독은 서독에 합병되기 전 서독으로부터 무제한의 정보를 제공받았다.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TV를 볼 수 있었고 서독의 친지도 방문할 수 있었으니 정신적으로는 친親서독화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차우세스쿠가 처형되는 루마니아 사태 등 동유럽 국가의 급변사태도 지켜보았다, 따라서 동독의 호네커 정권을 무너뜨린 다음에는 민주 정부를 세우고 국민투표를 통해 서독연방에 들어가는 결의를 할 수 있었다.
북한은 이러한 하부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우리의 TV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세를 보지 못하는 ‘정보 문맹’ 상태에 있다. 한국은 고사하고 중국 여행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북한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루마니아 모델에 가까운 것이 될 터인데 우리는 동서독이 통일되는 것을 북한 급변사태로 기대하고 있다. 동서독식 통일을 이루려면 북한에 정보를 제공하는 등 많은 노력을 펼쳤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지 않고 좋은 쪽으로만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통일은 비용이 아주 적게 드는 안전한 통일’이라는 기대에만 빠져 있다. 환자의 증세에 대한 진찰을 잘못한 의사가 올바른 처방을 할 수는 없다. 우리 역시 북한 문제에 대해 오판을 하고 있으니 결정적인 시기에 큰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중국과 미국 등 외부 세력 문제를 연결시키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지는데, 우리는 안일하게 있는 것이다. 차우세스쿠 모델로 김정은 정권이 붕괴되면, 눌려 있던 세력이 일어나 ‘피의 보복’을 가하게 된다. 병영국가인 북한에는 무기가 즐비하니 그들은 자체 무장을 한다. 쫓기게 된 기득권 세력도 무장을 할 터이니 둘이 부딛혀 내란이 일어날 수 있다. 북한에는 핵과 장거리 미사일이 있으니 이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일 수도 있다. 이것을 갖게 되는 세력은 적대 세력은 물론이고 그들을 지원하는 외부세력에 대해서도 우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즉시 관련국들은 군대를 파병해 북한을 안정화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노력에 대해 일부 북한 세력이 “외세가 북한을 침공했다”고 선동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민족주의로 무장해 외부에서 온 군대와 싸우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평화통일을 기대했던 우리는 어마어마한 지출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준비하지 않은 평화통일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평화통일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주문을 반복한다. 이러한 위험을 피해가고 싶다면 처음부터 북한 문제에 깊이 개입해야 한다. 북한에 정보를 집어넣어 민주화세력이 일어나게 하는 노력을 하고, 그 세력이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그것을 조기에 안정화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자유를 지키고 북한과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이다. 그래서 ‘자유는 공짜가 아니고 평화통일도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이러한 고비를 넘겨 동서독처럼 평화통일을 이뤄야 북한을 개발함으로 남북한 경제를 모두 일으키는 사상초유의 대박을 맞을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룬 한강의 기적을 북한에 적용시켜 대동강의 기적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 농촌 곳곳에 새마을 깃발이 펄럭이게 하는 것이다. 제발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 평화통일을 생각한다면 군을 중심으로 한 우리의 안보체제부터 재점검하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 거듭해서 말하지만 평화통일은 공짜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