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저쪽의 우크라이나 사태는 결코먼 산의 불이 아니다. 한국처럼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국가가 내우외환에 처해 있는 가운데 정권에 따라 대외정책이 극단적으로 선회하게 되면 중대한사태가 초래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중국의 동조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을 위시한서방세력 간에 팽팽한 대립으로 ‘신냉전’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략적목표를 위해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고 군사력을 동원하고 있고, 서방은 경제제재로 맞서고 있다. 이로 인해 금년 들어 러시아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14년 1분기 중 500억 달러의 외국자본이 이탈하면서 러시아의 주식지수는 10% 이상(달러 가치로는 20% 이상) 폭락했다.

2013년에도 630억 달러의 외국자본이 이탈한 바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불화가치의 추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1.5% 인상하고 160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루불화는 11%나 떨어졌다. 최근 금년 1분기 중경제 성장을 2.5%로 예상했으나 0.8%에불과했다.

러시아는 유망한 신흥공업국 중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가장 취약한 개발도상국으로 취급받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도발을 멈추지 않는 한 서방에 의한 에너지, 금융, 보험, 운송, 항구 등 광범위한 경제제재가 예상되고 있어 러시아경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정부재정의 60%를 석유, 가스 등 에너지 부문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에너지 수출이 막히면 국가적으로 심각한 상황에빠져 세계적 경제위기로 확대될 우려가없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2013년 말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부가 유럽연합과의 제휴협정을 거부한 후 이를 규탄하는 친서방계 주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혼란에 빠진 가운데 야누코비치 대통령이의회에 의해 탄핵된 후 러시아로 피신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 사태는 2004년 말에 일어났던 ‘오렌지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제2 오렌지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렌지 혁명은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선거무효를 주장하는 대규모 시위로 결국 재선거를 하게 되어 친서방 노선의 유센코가 당선되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인구 구성, 경제난,대외정책의 혼선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우크라이나의 북‧서부 지역은친서방 성향의 주민이 절대 다수인 반면,크림반도를 포함한 남‧동부 지역은 러시아인의 비율이 높다. 둘째, IMF의 구제금융이 시급할 만큼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져 있어 국민의 불만이 높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방과의 협력을 통해 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또한 서방의 자본을 끌어들이느냐 아니면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러시아의 지원을 받느냐가 쟁점이 되고 있다. 셋째, 1991년 소련에서 분리된 이래 친서방 세력과 친러세력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친서방 정책과 친러 정책으로 우왕좌왕하면서 내적 갈등을 심회시키고 외세 개입을 초래한 것이다.

야누코비치가 축출되자 러시아계 인구가 다수인 크림반도에서는 야누코비치를지지하는 시위로 혼란에 빠졌다. 러시아가 특수부대를 민병대로 위장시켜 투입하여 지원하는 가운데 친러 무장세력은 우크라이나 군부대와 관공서를 점거하는 등모든 것을 장악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한 후 러시아에 통합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지난 3월 21일 이를 승인했다. 이는 소치 동계 올림픽 폐막 직후 일어난 일이다. 크림반도는 흑해에 연한 세바스토폴이라는 부동항을 가진 전략적 요충이기 때문에 러시아는 이 같은 무리수를동원하면서 확보했지만 민주국가인 미국은 무력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크림반도는 전기, 가스 등 에너지와 음료수 등 필수자원의 공급을 우크라이나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하다. 또한 러시아와의 거리도멀고 러시아의 재정형편도 여의치 못해단기간 내에 그 같은 자원을 공급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을 추가적으로 병합할 가능성이높아지고 있다. 벌써 이 지역에서 친러 민병대들이 크림반도와 같은 방식으로 관공서를 점거하고 러시아와의 합병을 요구하자 우크라이나가 진압에 나섬으로써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러시아는 국경지역에 군대를 포진하여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면서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제재로 압박하고 있다. 이 같은 러시아의 움직임은 5월 25일로 예정된 우크라이나 대선에서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판단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인접국인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 러시아에 대한경각심을 높여주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들 국가들과 서방국가와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의 연장 러시아는 2008년 8월 비슷한 방법으로크림반도에서 멀지 않은 그루지야의 영토일부를 분리 독립시킨 바 있다. 당시 푸틴은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으면서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지역에 군대를 투입시켜 독립을 선언하게 한 후 독립을 승인함으로써사실상의 위성국가로 만들었다. 이에 앞서러시아계 주민이 반정부 시위를 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사주를 받은 무장세력이 군부대를 공격하고 관공서를 점거하면서 내전 상태에 빠지자 러시아는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투입했던 것이다. 그루지야 주변의 흑해연안 국가들은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자원의 보고이기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당시 그루지야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유럽연합(EU)에 가입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그루지야 사태 당시 전문가들은 러시아의다음 군사행동의 목표가 우크라이나 또는폴란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 동안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와 서방간에 긴장이 고조되어 왔다. 소련은 당시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였던 체코, 헝가리, 폴란드가 러시아의 위협을 의식하여 1999년 나토에가입했고, 2004년에는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이 나토에 가입했으며, 이들 국가 모두가 유럽연합의회원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으로 미국과 러시아와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폴란드와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에 합의했고, 그보다한 달 전에는 체코에 미사일방어망을 위한 레이더 기지 설치에도 합의한 바 있다.
러시아는 유럽연합과 나토의 확대, 미국과 동유럽 국가들과의 안보협력 강화 등에 대해 중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고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등에서 군사행동을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탈냉전 시대 질서재편 과정의 진통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냉전종식 후의질서재편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소련의 위성국가였거나 소련에 합병당했던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서방과의 협력이 절실하고 또한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친서방정책을 추구하고있는 것이다.

러사아는 에너지를 전략적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고,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세일가스 개발로 서방의 에너지 자급도를 높이고 나아가 에너지 가격을 폭락시켜 러시아의 영향력을 견제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유럽연합은 경제적으로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군사적 대결로 치닫기보다는 적절한 타협책을 찾을 것으로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는가? 첫째, 동북아의 갈등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 러시아의 침략행위에 미국이 경제제제 등 소극적 대응에그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경험이 없고 무모한 김정은이나 중국의 오판을 초래할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센카쿠열도(다오위다오)에 대해 군사 행동을 감행할 경우러시아와 동아시아 양대 전선에 직면하게 되는 미국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것으로 우려하는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대응의지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의식하여 최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미중 국방장관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센카쿠 열도는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대상”이라 선언했고, 오키나와주둔 미군 사령관 존 휘슬러는 “중국군이센카쿠를 점령할 경우, 미군은 일본을 도와 폭격으로 탈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중국 국방장관은 “군사력 사용용의”를 밝혔고, 시진핑 주석도 “전투 준비”를 지시한 바 있다.

둘째, 미국과 러시아 간의 대립은 북핵문제 해결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미 간의 협력관계를 자국과 미국과의 관계의 연장선상에서 인식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에 한일관계에대한 박근혜 정부의 원칙론적 접근을 못마땅하게 여길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한‧미‧일 공조를 의식하면서 안중근기념관개설 등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공세를취함으로써 한‧미‧일 공조를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마지막으로, 대외정책은 국가이익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협조 하에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하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결코급격한 변화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