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북한인권 운동의 역사에는 몇 가지 꼭 살펴봐야 할 사건들이 있다. 기업활동이나 국가의 정책과정에도 상황변화를 야기하는 환경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듯이, 단체의 활동이나 시대상황에 따른 운동에도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먼저 김대중 정부 말기였던 2002년 3월 14일 중국 베이징 소재 스페인대사관에 25명의 탈북인들이 진입했던 사건이다. 당시로는 연일 매스컴을 강타했던 대형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중국 등지를 헤매이던 탈북난민의 비참한 인권상황을국제사회에 알리고, 중국으로 하여금 탈북인들은 범죄자나 도망자가 아니라 국제법으로 보호되어야하는 난민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는 아주귀중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김대중 정부의 무관심과 홀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수많은 인권단체의 활동가들이 같이 고민하고 행동했던 국제연대의 시작점이었다는 차원에서도 모범적이고 용기있는 실천의 장이었다고 평가할수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당시 긴박했던 현장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두려움을안은 채, 25명이 탄 미니버스에 동승하여 이동하는 내내 창밖의 북경거리를 침묵으로 바라보던 그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세상 밖으로 알릴 수있었다는 것에 지금도 큰 자부심으로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또 하나의 사건은 2009년 12월 10일이다. 수많은 국제사회 인권활동가들의 헌신에 힘입어 북한 김정일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것을결의하고, 고발장을 들고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를 찾아가 고발장을 직접 접수한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그해 7월, 국내의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북한 김정일의 반인도적 범죄행위의 단죄를 결의하고, 제소운동에 나선지 수개월만에 역사상 처음으로 김정일을 반인도 범죄자로 국제사회가 심판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던 상징적인사건이었다.
이 또한 필자는 ICC 제소운동의 실무책임을 맡아 헤이그 고발현장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인 감격을 넘어 북한인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와 북한의 대결구도로 성장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에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후 수년 뒤, 2013년 3월 21일 국제인권단체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유엔의 행동이 시작되었는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설립을 결의했고, 호주의대법관 출신인 마이클 커비 위원장을 필두로세르비아 인권운동가, 인도네시아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조사위가 본격 활동에 돌입하여,1년뒤인 2014년 2월 17일 370여쪽에 달하는 북한인권보고서가 발간되었으며, 그동안 국제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유엔안보리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와, 북한인권현장사무소 설치를 권고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그동안 불가능할 것으로만 여겨지던 국제사회를 통한 북한정권의 심판이, 이제는 더 이상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 실질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한 참으로 획기적인 대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유엔은 COI 보고서에 담긴 내용 그대로를실천하는 첫 단추로 북한인권 현장사무소를지난 2015년 6월 23일 대한민국 서울에 설립하였으며, 본격적인 북한인권 감시활동에 돌입하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인권운동의 궤적을 짚어보는 역사적 사건에서 결과적으로귀결되는 북한인권 현장사무소의 설립은, 크게 다음과 같은 의미를 우리게 던져준다.
먼저, 정부적 차원의 논의와 노력에 앞서 국제인권단체들의 요청들에 유엔을 비롯한국제사회가 경청하고 행동한 결과라는 것과,북한인권문제가 더 이상 한반도에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하는 국제적 관심사로 대두되었다는 것이며, 북한인권의 시작과 끝을 국제사회와 함께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 실무적 책임을현장사무소와 한국정부, 국제인권단체들이공동으로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반도에서의 통일준비는, 통일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남남갈등의최소화와 통일과정에서의 국민적 역량을 극대화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차원에서, 국민으로서의 우리는 통일에서의 나그네가 아니라 주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광복 70주년이 나의 광복이었듯이 다가오는 통일은 나의 통일이 되어야 하고, 북한주민들에게는 자유와 생명, 인권과 미래를 가져다주는 희망의시작점이 되어야하며, 남한국민들에게는 한반도 르네상스를 새롭게 가동하는 계기가 되어야함을 잊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