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모
성우안보전략연구원장
예비역 육군준장
정치학 박사

동네 인근에 있어 석촌 호수 산책길에 늘 보았던 삼전도비(三田渡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이다. 비석에 그렇게 새겨져 있다.병자호란 때 조선 임금의 항복을 받은 청 태종이 자신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를 이제 항복해서 군신 관계가 된 조선이 한번 잘 만들어 보라고 해서 정성들여 만들어 세운 비석이다.

480년 전 한 겨울 청의 13만 대군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오자 황망하게 남한산성으로 도망간 인조 임금은 47일을 버티다가 송파리 삼전도에서 항복했다. 청 태종은 명나라를 멸하던 것을 보며 두려움에 떨던 인조임금에게 왕족을 멸하지 않고 나라를 보존하게 해 준 은공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조 임금의 특명으로, 국가적 사업으로 시행된 비단(碑壇) 건립사업은 전쟁이 끝난 2년후인 1637년 11월 초 완공되었다. 비문은 당대최고의 문장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서예가로 이름 높던 오준이 해서로 썼고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제액은 여이징이 썼다. 높이 약 4미터, 너비 1.4미터의 이수(비 머리)와 귀부(거북받침)를 갖춘 대형 비석이었다. 비의 앞면 오른쪽에는 만주(여진) 문자, 왼쪽에는 몽고 문자 뒷면은 한문으로 새겼다. 청나라 사신이 이를 조사하고 만족하였다고 한다.

청 태종의 은공(恩功)을 구구절절이 새긴 삼전도비는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는 비석이라는 오명을쓰고 있다. 비석 그 자체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으면 조선 후기의 대표적 석조예술품으로, 더구나 3개국의 문자가 함께 새겨진 유일한 비석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사적지 제101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삼전도비의 내용을 요약하면 청나라 황제가조선에 출병한 이유, 조선이 그간의 잘못을 뉘우치고 항복한 사실, 항복한 뒤 청 태종이 아무피해를 끼치지 않고 회군(回軍)한 사실, 청 태종이 머물던 곳에 비를 세우는 경위 등을 담고있다. 내용 중에 “...... 나라가 거의 망했다가다시 살아나고 종사(宗社)가 거의 끊어졌다가도로 이어지게 되었다. 모든 동쪽의 땅 수천리가 모두 살려주는 은택(恩澤)을 입었으니 이는실로 예로부터 드물게 보는 일이라 하겠다. 아아, 훌륭하시다. 황제시여 …….”

청은 비문의 내용, 크기 등에 대해 몇 차례트집을 잡은 뒤, 비문 맨 앞에 ‘대청 숭덕 원년’이라는 청의 연호를 먼저 쓰고, ‘삼한에 만세토록 황제의 덕이 남으리라’는 표현을 넣자 비로소 비를 세우게 하였다고 한다.

비문을 지은 사람은 후일 영의정을 지낸 이경석이다. 인조의 간곡한 부탁으로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희생하면서 지은 것이다. 조정 대신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한 일을 한 것이다.

그는 살아 명재상, 충신으로 추앙 받았으나 후일 ‘절의 없는 사람’으로 폄하되었다. 비석의위치는 인조 임금이 머리를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三拜九叩頭) 항복 의식을 행했던 그 자리이다(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송파리).이후 삼전도비는 그 내용과 역사의 부침에따라 몇 차례 수난을 겪었다. 청일전쟁에서청나라가 패하자 고종은 이 비석을 땅속에 파묻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는 1913년 다시 비석을 그 자리에 일으켜 세웠다. 일제는 1935년 5월 삼전도비를 보물 제164호로지정하였다.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다른 민족에게 지배 받은 사실을 강조하여 자신들의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민족의 수난은 일제의 보물처럼 귀중한 사료인가 보구나. 1945년 광복을 맞아 삼전도비는분노에 찬 지역민들에 의해 다시금 땅 속에 매몰되었다.
20여 년간 당속에 묻혀 있던 삼전도비가1963년 서울지역 대홍수 때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정부는 병자호란의 패배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고자 이 비석을 송파구 석촌동의 공터에 다시 세우고(위 사진) 비석 옆에 인조 임금이 항복하는 장면의 부조(浮彫)도 만들어 조그만 공원을 조성하였다. 현재 삼전도비는 석촌호수가 롯데호텔 부근에 옮겨져 있다. 애초 세워졌던 부근이란다.

나는 삼전도비를 볼 때마다 늘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자들은 패패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병자호란을 보더라도 불과 40여 년 전에 임진왜란, 정유재란으로 이어진 9년 전쟁의 고통을 겪었다. 일본의 정세 파악을 위해 통신사도 파견했었고 10만 양병설도 제기되었다. 말만 무수했고 실천은 없었다. 병자호란도 갑자기 발발한것이 아니다. 비문 내용에도 나오거니와 정묘호란(인조 5, 1627년)을 당하고도 제대로 대비를 않았던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경제, 군사, 영토·역사 문제 등 자국의 안보, 국익을 위해 급박하게 움직이는데 우리 정부나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어찌 그리도 과거 뼈아픈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지... 중국, 일본의 군사대국화, 북한의 핵무기보유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지도자들은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