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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의 영웅, 채명신 장군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0-11-30 (월) 17:43


선영제
(예)육군중장
前전쟁기념사업회장


2020년 11월 25일은 채명신 장군님이 하늘나라로 가신 지 7년이 되는 날이다. 전장에서 늘 장병들과 함께한 사 령관, 그는 장군 묘역을 마다하고 사랑하던 파월병사들 곁에 고이 잠들어 계신다. 채 장군은 시대의 영웅으로, 시 대의 거인으로, 시대의 참군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그러한 채명신 장군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배우고 익혀야 할 정신은 무엇일까? 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채명신(蔡命新, 1926~2013) 장군은 1926년 11월 27일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나 자유를 찾아 1947년에 월남하여 1949년 육사 5기로 임관했 고, 1951년 1월 ‘백골병단(유격부대)’의 연대장 으로 북한군 후방지역에 침투하여 북한군 대남 유격대 총사령관 중장 길원팔을 생포했다. 1965 년 주월한국군사령관에 임명되어 3년 8개월간 지휘했으며 1972년 육군중장으로 전역했다. 생 전에 그가 받은 태극무공훈장 1회, 을지무공훈 장 4회, 충무무공훈장 6회, 화랑무공훈장 5회 등 이 그의 용맹한 삶을 증명해 준다. 필자는 채 장군님을 직접 모시고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생도시절에 채 장군님으로부터 전투 경험담을 직접 들었고, 또한 전쟁기념사업회 회 장 시절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강연에 모셔서 베트남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크게 감명받고 존경해왔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월남 정세판단을 잘 못하여 실패했지만, 주월한국군은 채 사령관님 이 게릴라전에 대한 본질을 꿰뚫어 보시고 한국 군 특유의 뛰어난 군사전략으로 성공했다. 베트 남전에서 우리가 흘린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한국군의 참전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초석이 되었으며, 한국군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알렸 고, 군 장비 현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한 국군 32만여 명의 전투경험을 갖게 된 매우 의미 있고 값진 참전이었다. 생전의 채 장군님의 어록과 회고록 등 저서, 그 리고 강연시 들었던 내용을 종합하여, 우리가 배 우고 익혀서 계승해야 할 ‘채명신 정신’을 다음 과 같이 정리해 본다.

투철한 위국헌신의 정신과 애국심 채 장군은 오로지 위국헌신의 일념으로 국가 와 군을 위해 일평생을 바친 시대의 거인이었다. 끝없는 부하사랑과 애국심, 그리고 민심을 중시 했고 자유수호정신과 부국강병의 길에 항상 앞 장섰던 군인의 표상이자 참 군인이었고, 후배들 의 롤모델이었다. 자기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졌고 생각하는 전투전문가였다. 그리고 전투하기 전 에 치밀한 계획과 완벽한 준비 그리고 철저한 훈 련으로 필승의 군대를 만들어 6·25전쟁과 베트 남전쟁에서 패배를 모르는 승리를 만들어 내는 무적의 군인이었다. 우리나라에는 말로만 애국하는 사람들이 많 다. 당시 월남전에 참가한 장병들이 김치가 먹 고 싶다고 하여 미군에 요청하였다. 한국에서 온 김치캔(K-ration, 전투식량) 뚜껑을 개봉하 자 새빨간 녹물이 나왔다.

기술이 없어서 녹이 슬었던 것이다. 채 사령관은 이 김치캔을 가지 고 병사들에게 갔다. 처음에는 환호했으나 김치 캔을 열어본 병사들은 “사령관님, 이게 김치입 니까?”하고 항의했다. 채 사령관은 병사들을 향 해서 말했다. “우리나라는 김치캔 하나 제대로 만드는 기술이 없어서 핏물 나오는 김치가 됐 다. 이걸 안 먹겠다고 하면 맛있는 일본산 김치 캔이 들어오고, 그 대금은 일본이 가져간다. 그 래도 핏물 나는 김치를 안 먹을 것인가?” 그러자 장병들은 “핏물이라도 조국을 위해서 먹겠다”고 했다. 파월장병들이 정말 애국자였다. 그러고 나서 장병들도 울고 사령관도 울었다. 게릴라전의 명장 채 장군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치르면 서 게릴라전의 명장이 됐다. 베트남전쟁에서 게 릴라전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고 한국적 전술인 ‘중대단위 전술기지’를 창안하여 베트남전에서 한국군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게릴라전의 본질인 ‘인민은 물이요, 게릴라는 물고기’에서 물과 물고기를 분리하면 성공할 수 있고, 분리에 실패하면 백년이 가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군사작전 30%, 대민지원 및 심리전에 70%의 비 중을 두었다.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 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정하 고, ‘물과 물고기’를 분리하기 위해 ‘중대단위 전 술기지’를 운영하면서 야간매복으로 야간작전 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낮에는 마을에 내려가 대 민지원과 심리전을 했다.

심리전은 ‘물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주도록’ 강조했고, 마을에서 는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나 촌장들에게 공손 하게 예의를 갖추며 겸손하게 대하였으며 무릎 을 꿇고 담뱃불을 붙여드리는 등 주민들의 마음 을 얻는데 주력했다. 베트콩들의 본거지인 빈딘성 퀴논 중부에 있는 평야지역인 고보이 지역은 베트콩들의 세금착취, 식량과 군사비 등을 조달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한국군이 처음부터 전투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군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베트콩들이 설치한 함정(깊이 2m로 2개의 철창에 소똥을 발라 파상 풍을 유발하거나 독사를 넣어둠)으로 한국군은 작 전에 막대한 지장을 받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베 트남남인들이 한국 인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 고 함정작전에 도움을 주는 분에게 인삼을 주겠다 고 하여 함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주민과 게릴라들을 분리 시키 는데 성공하였으며, 베트콩 점 령지역을 한국군 통제지역으로 점차 평정해갔다. 이러한 고보 이에서의 한국군의 전략은 뚜 렷한 성과로 나타났고, 이 무렵 1966년 5월 29일자 ‘런던 타임 즈’ 기사에서 “미군이 한국군의 고보이 전략을 배웠거나 또는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을 전담했 더라면 전쟁이 손쉽게 끝났을 것이다”라는 극찬 기사로 한국 군의 위상 제고는 물론 신뢰가 매우 높아졌다. 또 한 1966년 8월 ‘두코 전투’에서 맹호기갑연대 1 개 중대가 그들보다 6배나 많은 월맹군 2개 대대 의 기습을 받았지만 대승을 거뒀다. 아군 7명이 전사했지만 월맹군 187명을 사살했다. 아울러 1967년 2월 ‘짜빈동 전투’에서 해병 청 룡부대 1개 중대로 적 1개 연대의 공격을 막아내 고 적 243명을 사살했다. 이러한 놀라운 전투결 과에 당시 미국 언론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 고의 승전보”라고 했고, 전 세계 언론은 “보지 않 고는 믿어지지 않는 베트남전쟁의 기적을 한국 군이 만들어 냈다”고 했다. 그 후 미군들은 채명 신 장군을 ‘군신(軍神)’이라 부르며, 한국군에 적 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탁월한 리더십 채 장군은 또한 훌륭한 인성과 뛰어난 창의력으로 모든 업무를 지도·감독·확인했다. 채 장군 은 “전장터에서는 네가 살아야 내가 살고, 내가 살아야 너도 산다”는 전우애의 중요성을 강조하 면서, 부하 보기를 친자식처럼 대하였다. 또한 능력과 인격에 대한 높은 신뢰로 상하가 하나 되 어,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는 리더십 의 진수(眞髓)를 보여 주었다. 소위로 임관 후 제 주도 9연대 소대장으로 부임하면서 경계하는 소 대원들을 골육지정으로 대하여, 그의 통솔철학 이 된 ‘골육지정의 리더십’을 터득했고, 부하가 생명을 바쳐 상관을 위하게 만드는 건 ‘골육지정 의 통솔’뿐임을 깨달았다.

그는 “전장에서 부하들의 피를 덜 흘리게 하기 위해서는 평시 철저한 교육훈련을 통해 강한 군 인을 만들어야 하며, 전투를 할 때는 솔선해 먼 저 뛰어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6·25전쟁 당 시 백골병단을 이끌 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 는 강력한 군인정신으로 ‘전장의 불사조’로 명성 을 떨쳤다. 그는 우리에게 “자유수호를 위해 죽 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는 전투승리를 위해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훈 련으로 필승의 군대를 만들었고 승리를 가져오 게 하였다. 베트남전쟁의 교훈 채명신 장군은 “월남(자유월남, 남베트남을 의 미)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없었고, 스 스로 자기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국민이 나 군인들에게 없었으며, 군은 군기가 문란하고 전투력이 없었다. 또한 정부나 군 고위층의 부패 가 심각해서, 이런 나라는 외국에서 도와줘도 결 코 적과 싸워 이길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약점을 이용한 공산주의자들의 선전과 선동, 그리고 심리전에 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 래서 남베트남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채 장군은 베트남전쟁의 교훈을 말하면서 “한 국이 월남과 같은 나라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 다”고 강조했다. 베트남전의 교훈에서 배워 국민 과 군인이 하나 되고, 전투 의지가 확고할 때 싸 워 이길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채명신 장 군님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대한민국을 지켜 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도 살고 나도 살아남는다. 수많은 사선(死線)을 넘으셨던 ‘불사조(不死鳥)’, ‘베트남전의 전쟁영웅 채명신 장군’의 이야 기들을 우리의 젊은이들과 군 장병들이 배우고 익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디딤돌 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와 자유 는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 베트남전쟁 당시 채명 신 장군을 비롯한 주월 한국군 32만여 명 장병들 의 피와 땀과 눈물이 큰 자양분이 되었다. 이러 한 베트남전쟁의 이야기들은 국민들의 머릿속에 서 잊혀 질 게 아니라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대 한민국의 역사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모든 국민이 하나 되어 노력할 때,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있고 밝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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