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 합참의장, 첫 군용기 타고 방중



김귀근
연합뉴스 국방부 출입기자
threek@yna.co.kr

지난 4일 우리 공군의 C-130 수송기가 중국 베이징 서우두(수도) 공항에 위용을 드러냈다. 성남의 서울공항을 이륙, 2시 30분간 서해와 중국 하늘을 날아 베이징에 도착한 것이다. 동체에 선명하게 새겨진 태극마크의 크기는 작았지만 대륙을 압도할만큼 힘이 있어 보였다.

정승조 합참의장을 비롯한 15명의 합참 군사대표단을 태운 C-130 수송기는 이렇게 중국을 방문했다. 한국의 군용기가 군 고위급 인사를 태우고 중국 하늘을 힘차게 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중국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무관 중 공항에 마중나와 이 모습을 지켜본 일부 무관들의 눈에는 감격의 이슬이 맺혔고 그들의 가슴도 벅차 올랐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은 6·25전쟁 당시 적으로 만났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승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 때 중국군이 개입했다. 북진을 거듭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10월 26일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63년 전 적으로 만났던‘중공 오랑캐’와 한국군이 우방의 관계를 맺고 있다. 반면 북한군을 도왔던 중국은‘혈맹’이란 관계에서 서서히 일반적인 국가관계로 돌아서고 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한-중, 북-중관계를 두고 한말인양 싶다.





한-중, 상호군사훈련 참관 협의 중

정 의장의 중국 방문(6. 4~5) 성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과 중국군이 상호군사훈련을 참관하는 문제에 대해 상당한 공감을 이룬 것이다. 대표단은 방중 첫날 팡펑후이 중국군 총참모장 주관으로 진행된 만찬 행사에서도 상호군사훈련 참관 문제를 강조했다고 한다.
즉, 양국이 독자적으로 실시하는 대테러훈련과 화력시범 훈련 등을 참관하는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소장급 전략대화가 개최되면 이 문제가 구체적으로 협의될 것이라고 합참 관계자는 설명했다. 국가간의 상호군사훈련 참관을 협의하는 것은 초보적 신뢰구축 단계를 뛰어넘은 중간단계의 신뢰관계로 진입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3년 11월 김종환 전 합참의장이 상호 군사훈련 참관 문제를 처음 제기했고, 중국은 이듬해 한미연합 쌍용훈련 참관을 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연합훈련 참관에 대해 미군 측에서 난색을 표명하면서 한미연합훈련 참관은 논의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합참은 2009년 4월 중국군이 참관할 수 있는 한국군 독자 훈련 리스트를 중국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합참은 1단계로 육·해군의 대테러훈련과 조난잠수함 탐색훈련을, 2단계로 연대급 이하 합동훈련 및 화력시범 훈련을 각각 참관토록 하겠다는 의향을 중국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측은 이에 대한 답변을 아직 하지 않고 있다.

군사분야에서 전략적 협력 확대키로

정 의장과 팡펑후이 중국군 총참모장은 지난 4일 베이징에서 한·중 군사회담을 하고 군사분야에서의 전략적 협력을 보다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2008년 양국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음에도 군사분야에서의 협력은 초보적인 신뢰구축 수준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자는 합의였다.
합참은 회담 후 발표한‘보도문’을 통해“양국 대표는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부응하도록 군사분야에서의 전략적 협력을 보다 강화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군사회담을 통해 양국 군 수뇌부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구체적인 실천 과제를 제시함에 따라 두 나라 군사관계가 한 단계‘업그레이드’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합의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이뤄진 것이다. 특히 양국이 군사부문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면 북한의 군사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완충제가 될 것으로 군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양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군 수뇌부간 상시 전화통화 체제를 구축하는 데 합의했다. 전략적 협력 확대의 첫 번째 조치로 군 수뇌부끼리 정기적으로 전화통화로 공조할 수 있는 체계를 신설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도발 등 유사시 양국 군사당국간 즉각 협의체제가 중국과도 마련되게 됐다.
양국은 이미 군 당국 간에 2회선이 연결된 전화를 이용할지, 국방장관간 또는 합참의장과 총참모장간‘핫라인’을 별도로 개설할지에 대해서는 추가 협의를 진행키로 했다. 중국은 우리 국방부와 지난 2007년부터 국방장관간 핫라인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 합참의장과 중국 총참모장간 핫라인은 양국 국방부간 핫라인 설치와 연계해서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군 수뇌부, 북한‘핵무장화’절대 반대





이번 한-중 군사회담은 중국군 수뇌부가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는 것도 주요 성과로 꼽힌다. 베이징에서 열린 군사회담에 참석한 중국군 고위 인사를 포함한 여러 중국군 인사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면서“북한의 핵무장화에 절대 반대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우리 군도 군사회담 등에 참석한 중국군 고위 인사들에게 북한의 핵무장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고 중국은 이에 공감했다.
정승조 합참의장도 지난 5일 베이징‘8·1 청사’에서 판창룽 중국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같은 우리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은“북한의 비핵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이 한반도 안정을 해치는 큰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판 부주석도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안정을 위해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에 공감했다고 합참 관계자가 전했다. 정 의장은 이날 1시간 15분가량 진행된 면담에서‘북한의 비핵화’를 여러 차례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군 총참모장도 북한의 핵개발에 거부감을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팡펑후이 총참모장은 군사회담에서 정승조 의장과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의견을 교환하던 중“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반도 비핵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담 석상에서 강한 어조로“한반도 비핵화는 동복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한반도 비핵화가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팡 총참모장이‘북한’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북한의 핵개발을 우회적으로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해석됐다. 팡 총참모장은 또“한반도 안보 상황이 불안해지면 동북아 전체가 불안해질 수 있다”면서“이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한 마틴 뎀프시 미국 합참의장을 만나 북한의 제4차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하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합참의장, 중국 북해함대 심장부 가다
콧대 높기로 이름난 중국 해군이 북해함대의‘심장부’를 정승조 의장에게 공개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정 의장은 지난 5일 중국군이 제공한 전용기를 타고 산둥반도 칭다오에 있는 중국 해군 북해함대사령부를 방문했다. 중국 해군 3개 함대 가운데 가장 늦은 1960년 창설된 북해함대는 중국의 모든 핵잠수함을 운용하는 기지이다. 지난 2월에는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랴오닝함’이 배치되기도 했다. 정 의장은 북해함대와 우리 해군 2함대간 직통 전화가 설치된 북해함대 내 작전처를 방문했다. 작전처는 북해함대의 작전을 총지휘하는 심장부로, 한국군 고위 장성에게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합참의장 시절인 지난 2007년 북해함대를 방문한 적이 있지만 중국은 당시 작전처를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중국군은 부두에 정박한 유도탄 구축함을 보여줬다.
북해함대는 4,500~6,500t급 핵잠수함 5척, 1,500~3,000t급 잠수함 24척, 3,000~7,100t급 구축함 10척, 1,700~4,000t급 호위함 9척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함대는 한·미 양국이 서해에서 연합훈련을 하면 함대 실사격, 정찰 및 잠수함 훈련 등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압록강 하구에서 산둥반도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 책임 작전구역이다. 이 함대는 한·미 양국이 서해에서 연합훈련을 하면 정찰 및 잠수함 훈련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 군 고위 관계자들이 이날 방문한 함대 사령부 건물은 수행하는 임무에 비해 소박했다.
1800년대 지어져 고풍스러운 분위기 물씬 풍기는 이 건물은 3층으로 아담했다. 건물 3층에는 작전처 상황실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령부 작전처는 북해함대의 작전을 총지휘하는 함대사령부의‘심장부’이다. 작전처는 랴오닝성 압록강 하구에서 산둥반도 남부 해상에 이르는 광대한 해상의 북해함대 작전책임구역을 총지휘한다.
이 작전처 상황실에 우리 해군 2함대와 연결된 직통전화(핫라인)가 가동되고 있다. 우리 해군 2함대와 북해함대는 지난 2008년부터 핫라인을 개설해 운용하고 있다. 월 2회 정기적으로 통화가 이뤄지고 있다. 전화와 팩시밀리가 설치돼 양측간에 정기적인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정승조 의장은 우리 군 고위 인사로는 처음으로 이 상황실을 방문, 중국군 상황장교에게 핫라인을 한번 시연해 달라고 말했다. 서툴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 장교는 한국말로 2함대 상황실을 호출했다. 우리 해군 2함대와 전화가 연결되자 정 의장은 정진섭(해사 37기·소장) 2함대사령관과 통화했다. 정 의장은“전화 라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해상에서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소통을 잘해달라. 충분하게 정보를 교환하고 갈등의 소지를 없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정 의장은 텐 중(중장) 북해함대사령관과 회담한자리에서“2함대와 연결된 핫라인이 소통 창구 기능을 잘하는 것 같다”면서“탐색구조 작업 중 상대편 구역을 침범할 수 있으니 통신라인을 잘 활용해 상호 작전상황을 통보하자”고 말했다. 텐 사령관은“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중국 소담이 있다”며“칭다오는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상호 함정 방문 기회를 확대하고 인사교류도 활성화하자”고 화답했다.
중국, 북한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정승조 의장의 중국 방문의 타이밍은 아주 절묘했다. 지난 5월 말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가 중국을 방문한지 며칠 만에 이뤄졌다. 당시 최룡해를 맞이한 중국의 태도와 이번 합참 군사대표단을 맞은 중국의 태도는 완전 딴 판이었다. 최룡해는 귀국 직전에야 시진핑 국가주석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이 어렵고 짧은 만남을 위해 최룡해는 평양행 비행기출발 시간을 세차례나 늦췄다고 한다. 그는 시진핑을 면담하고 나서 대사관 직원들과 수행원들을 데리고 베이징 시내로 나가 거하게 반주를 곁들인 저녁으로 자축하고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군 합참의장을 소홀하게 대접하지 않았다. 중국군 전용기인 보잉 737기를 선뜻 내줘 북해함대를 방문토록 했다. 태극기를 단 한국의 군용기에 베이징 하늘 길을 열어줬다. 군사회담 후 진행된 저녁 만찬 자리에서도 한국군과의 전략적 협력 확대 필요성을 누누히 강조했다고 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세월의 무상함, 경제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굴욕감을 맛보았을 법하다. 이것이 국제사회의 냉정한 힘의 질서인 것을 어떻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