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환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

7월 27일은 6·25전쟁의 포화가 멎은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이 중단된 지 60년이 흐르는 동안에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전쟁을 잊고 있으면 반드시 또 다른 전쟁이 찾아 온다’는 엄중한 교훈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는 6·25 전쟁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6·25의 교훈을 잊어가고 있다. 6·25참전용사들의 공적을 기억하려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전쟁을 기억하고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분위기에서 단연 세계 으뜸이다.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광장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는“Freedom is not free”라는 교훈이 새겨져 있다. 자유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이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했을 때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재단 윌리엄 웨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정전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30시간 동안 한국전 참전용사 3만 6,536명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호명할 것입니다.”
그는 한국전에 참전해서 한쪽 다리와 한쪽 팔을 잃은 예비역 대령이며, 한 팔이 잘려나간 군인 조각상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 19일에는 워싱턴 펜타곤에서 6·25전시관 개관식이 있었다.
전쟁 동영상은 물론 당시 사용했던 무기와 전투복, 전황을 전하는 신문기사도 있다. 여기에서 잊혀진 승리(forgotten victory)라는 테마를 선보이기도 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결코 전쟁을 잊지 말자는 그들의 다짐이다.
참전용사들의 위훈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그들의 행동이다.
영국도 참전용사를 기억하는 분위기에서 미국과 다르지 않다.
귀족의 자제들만 입학한다는 이튼스쿨, 이튼스쿨의 졸업생 2,000여명이 1, 2차 대전에서 전사했다. 이튼스쿨 본관을 오르내리는 계단 양쪽에는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이 되고 있다.
프랑스는 마을마다 참전용사를 기리는 위령탑이 있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거의 다 있다. 거기에는 이름, 나이, 참전전투 등이 적혀 있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걸프전, 한국전쟁 등 모든 참전용사들이 기록되어 있다.
위령탑에는 항상 꽃이 놓여 있고 늘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다.
일개 병사가 전사해도 영결식은 반드시 대통령이 참석한다.
군인은 물론이고 소방관, 경찰관 등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 죽은 이들은 모두 해당된다.
최근에 이라크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 영결식에 대통령이 참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매우 특별한 사정으로 대통령이 못 올 경우에는 총리가 반드시참석한다.
그러나 정작 전쟁의 당사자였던 우리는 6·25전쟁을 기억하지 않고 있다. 참전용사들을 홀대하고 있다.
며칠 전 모 언론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소년 69%가 6·25 전쟁을 북침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그뿐 아니다. 수많은 참전용사들이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인상되고 또 인상된 참전수당이 고작 월 17만원 정도다.
목숨 바쳐 이 나라를 지킨 대가가 손주들 과자 값 주기도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전 60주년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상무정신이 없는 민족은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세계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전쟁에서 강한 민족은 살아남고 약한 민족은 멸망했다. 그렇다면 강한 민족과 약한 민족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국민들의 상무정신이다. 상무정신은 바로 국가의 운명과 민족의 흥망성쇠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945년 이후를 우리는 전후시대라 부른다. 아직까지 지구상에 그 이상 큰 규모의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전쟁과 반전쟁’에서 2차 대전 이후에 세계는 150여회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고 거기에서 순수 군인만 720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했다.
1차 세계대전 전사자가 820만 명임을 비추어 볼 때 인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3차 세계대전을 치룬 셈이다.
우리는 7월에 정전 60주년을 맞는다.
이 땅에서 제2의 6·25를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직 적을 압도하는 강력한 군사력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안보제일주의 국가정책이 필요하다. 한미연합사를 주축으로 하는 한미동맹도 탄탄하게 버텨 주어야 한다.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국민들의 상무정신이 이 땅에 차고 넘쳐야 한다.
무엇보다 전쟁터에서 돌아가신 분은 최고의 전쟁영웅으로 추앙받고, 살아서 돌아오신 분은 최상의 예우를 받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유사시 너도나도 전쟁터로 달려 갈 것 아닌가?
모든 국민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터로 달려 나가는 나라를 감히 어떤 나라가 침범하려 하겠는가?
정전 60주년을 맞으며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름 모를 골짜기에 누워 계신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참전노병들에게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