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없음
‘영욕의 용산기지’ 언제 국민 품에 온전히 안기나
기자 : 관리자 날짜 : 2020-12-29 (화) 20:28




한국과 미국이 지난 11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2개 구역을 우리 정부에 먼저 반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 하자 여기저기서 ‘반환 첫발’ 등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용산기지를 한국에 반환하겠다고 약속한 지가 까마득해서 더욱이 기대감이 컸으리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샴페인을 터트 리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이번에 합의된 곳은 용산기지 내 남쪽의 국립중앙박물관 인근 스포츠 필드 부지 (4만5천㎡)와 동남쪽의 소프트볼경기장 부지(8천㎡) 등 5만3,418㎡ 규모이다. 이는 전체 용산기지 반환 대상 203만㎡의 2.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용산기지 겨우 2.6% 반환 합의 …‘공원화 일정 늦을라’ 속탄다

전체 부지 중 겨우 2.6% 반환에 그친 용산기 지가 온전히 우리 국민 품에 안기려면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까? 서울 도심의 알짜배기 땅에 ‘도 심의 섬’처럼 조성된 용산기지가 온전한 ‘한국 땅’이 되길 많은 국민들은 소망하고 있다. 이 기 지를 조속히 반환받아 국가의 자존감을 찾고, 또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국민의 휴식처로 삼길 바 라는 마음일 것으로 본다. 이런 기대감에 대해 국방부와 외교부 등은 전 체 용산기지를 반환받는 시점을 현 단계에서 확 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군이 아직 용산기지에 잔류하고 있고, 기지내 구역별로 상 황과 여건이 달라 전체 반환 시기를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 당국자는 “용산기지 전체는 한미연 합사령부 등 현재 남아 있는 부대들의 평택기지 이전과 용산에 잔류하는 부대의 시설 공사가 완 료되어야 폐쇄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반환 시 기를 지금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 다. 현재 용산기지에 있는 한미연합사령부는 내 년 말까지 평택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일정대로 연합사가 용산기지에서 빠진다면 더는 단일 규 모의 부대는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내년 말까지 도 전체 기지가 반환 합의되지 않는다면 용산기 지는 사실상 ‘공터’로 남게 된다. 용산기지 전체 반환 일정이 지연될수록 용산 공원화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제기된 다. 용산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려고 해도 언제 기지가 반환될지 알 수 없다면 사업 일정을 진행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연합사 등의 평택 이전사업이 완료되어야 용산기지 전체의 반환 이 가능하다”며 “다만, 정부는 용산공원 조성 계 획에 차질이 없도록 미측과 긴밀히 협의하여 반 환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용산기 지는 현재 사용 중인 대규모 기지로서, 기지 내 구역별로 상황과 여건이 달라 전체를 한꺼번에 반환받는 것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용산공원 조성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반환 이 가능한 구역부터 순차적인 반환을 추진 중이 며 미측과 구체적인 구역을 협의 중”이라고 설 명했다. 정부가 구상 중인 용산공원 조성 면적은 총 291만㎡에 달한다. 당초 정부는 2027년까지는 용산공원을 완공한다는 목표를 설정한 바 있으 나 시점은 2030년 이후로 다소 밀린 상황이다. 용산기지 내 151개 동의 존치대상 건물 중 81개 동은 존치, 58개 동은 해체, 12개 동은 보류 대 상으로 분류된 바 있다. 건물의 존치 여부나 존 치대상에 대해서도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충 분히 수렴해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공 원 조성계획을 내년 말에는 확정할 방침이다

땅속 기름 범벅 미군기지… 반환해도 환경오염 책임·비용 문제 산적 용산기지 내 2개 구역에 이어 기지 전체를 반 환받더라도 땅속까지 기름 범벅인 부지 환경오 염 정화 문제가 한·미 간의 마찰 소지로 부각된 다. 용산기지에는 기름 오염뿐 아니라 맹독성 발 암물질까지 검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 년 녹색연합 등 시민사회단체가 미국정보자유법 (FOIA)에 따른 절차를 거쳐 ‘용산 미군기지 내부 유류 유출사고 기록(1990∼2015)’을 입수했다 고 밝힌 바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일어난 유류 유출사고는 총 84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3.7t 이상의 기름 유출사고가 7건, 400 ℓ 이상의 사고가 31건으로 각각 포함돼 있다. FOIA로 밝혀진 84건의 오염사고는 용산기지 전 역에 걸쳐 발생했다. 유류 유출사고의 주요 원인은 노후화한 유류 저장탱크와 배관에 있다. 특히 지하 유류 저장탱 크(UST)는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관리를 소 홀히 할 경우 어느 시점부터 기름이 새어 나왔는 지 조차 모르게 된다. 주한미군기지 땅이 오염된 곳은 비단 용산 뿐만 아니다. 미군기지를 반환받 으면 환경오염 정화를 거친 후에 지방자치단체 나 민간에 매각하는데, 환경오염을 정화하는 데 만 2~3년이 소요된다. 그러나 한·미는 환경오염 책임과 정화비용 부 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 다. 미군에 공여한 부지가 기름에 오염되고 맹독 성 발암물질 등이 검출되는 것은 미군 주둔에 따 른 것이라는 한국 입장과 달리, 미국 측은 주한 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정화 의무가 없다 고 상반된 주장을 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9년 합의한 공동환경평가절차서 (JEAP)에 따른 환경조사 및 위해성 평가에 따라 확인된 오염은 미국 측이 정화해야 한다고 요구 하면서 ‘지난 70년간 10만 명당 1명이 암에 걸 리는 수준의 오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측은 최근 3∼5년 내 발병이 확실한 수준의 오염이 KISE(인간 건강에 급박 하고 실질적인 위험)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굽히 지 않고 있다. 특히 미측은 SOFA 제4조에 따라 기지 반환 시 오염 정화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 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판결에서 SOFA 4조 규 정은 “미국의 정화 의무 면제가 아니다”라고 판 단했다. 그런데도 미측은 기지 오염 정화 비용 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 는 “2001년 SOFA 합의의사록에 환경조항을 신 설한 이후 한·미 간에 기본적인 오염정화 책임에 대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환경보호에 관한 특별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미측이 주장 하는) KISE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 즉 평가 기준에 대해 한·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 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9년 12월 반환된 원주 캠프 이글과 캠프 롱, 부평의 캠프 마켓, 동두천 의 캠프 호비 쉐아사격장 등 4개 기지의 환경 오 염정화 비용도 정부가 우선 부담하기로 했다. 현 재 추가조사 중인 캠프 이글을 제외한 나머지 3개 기지의 오염정화 비용은 약 980억 원에 이를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관계자는 “앞서 반환된 기지 중 국방부 에서 오염정화를 완료한 기지는 24개 기지로, 소요된 정화 비용은 약 2천200억 원”이라며 “2019년 12월 반환 합의한 원주 캠프 롱, 부평 캠프 마켓, 동두천의 캠프 호비 쉐아사격장 등 3 개 기지는 2021년 2월까지 오염정화에 대한 설 계를 완료하고, 오염정화 작업에 착수 예정”이 라고 말했다. 협상 끝에 이번에 반환키로 합의한 12개 기지 의 오염정화도 정부가 우선 책임지는 것은 마찬 가지다. 정부 관계자는 “오염정화 책임과 관련 해 미측과 협의를 지속하면서 독일의 경우와 같 이 우리 국내법에 따라 환경오염에 대한 정화 책 임을 지우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주한미군사령부·8군사령부는 이미 평택으로 이전 용산기지에서 가장 부대 규모가 컸던 미 8군사 령부는 한국 주둔 64년만인 2017년 7월 평택으 로 이전해 신 청사에 입주했다. 8군사령부는 주 한미군의 주축이자 상징이었다. 미 8군은 인천 상륙작전에 힘입어 1950년 9월 15일 낙동강 전 선에서 진격하면서 북한군을 완전히 제압했다. 1950년 10월께 38선에 도달했으며 국군 제1사 단의 지원으로 평양을 점령했다. 미 8군은 1953년 7월 휴전협정으로 공식 휴전 상태에 돌입한 직후부터 용산에 주둔했다. 주둔 64년 만에 바뀐 미8군의 새 주둔지 험프리스 기 지는 1961년 작전 도중 헬기 사고로 사망한 미 육군장교 벤저민 K. 험프리 준위를 기념해 1962 년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이후 2018년 6월 주한미군 심장부인 주한미 군사령부가 용산에서 평택 험프리스 기지로 옮 겨갔다. 4층짜리 본관과 2층짜리 별관으로 이뤄 진 신청사는 연면적 2만4천㎡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이다. 주한미군의 주둔 역사를 보면 1945년 8월 29 일 미 극동군사령관 일반명령 제1호 등에 따라 같은 해 9월, 일본 오키나와 주둔 제24군단 예하 미 7사단 병력을 한국으로 이동시키면서 용산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당시 미 7사단은 1945년 9월 9일부터 30일까 지 서울과 인천에 있던 일본군 무장해제와 주요 시설물 보호 및 치안 유지를 담당했다. 이때 24 군단 사령부가 서울 용산에 설치됐다. 미군이 용 산에 첫 둥지를 튼 시점이다. 그리고 1949년 1월 24군단 병력이 철수하고 마지막 남은 5전투연대도 그해 6월 모두 철수 했다. 같은 해 7월 미 군사고문단 창설로 482명 의 미군만 남았으나, 1950년 6·25전쟁이 발발 하자 미군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다시 한국에 투 입됐으며 1957년 7월 주한미군사령부가 창설되 는 등의 역사를 갖게 됐다. 평택 주한미군사령부 이전에 따라 미군이 용산에 주둔한지 73년 만에,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에 창설된 지 61년 만에 용산 시대를 마감하고 평택 시대를 열었다는 평 가가 나온다.몽골군 병참기지·청군과 일본군 주둔지.. 영욕의 용산기지 용산 미군기지는 13세기 말 고려를 침략했던 몽골군이 병참기지로 삼으면서 외국 군대가 터 를 잡은 오랜 역사가 시작된다. 1882년 임오군 란이 일어나자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청 나라 군대가 들어와 머물렀다. 용산이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 땅이 된 것은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4일 러 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의 육군 선발대는 며칠 뒤 인천에 상륙해 서울 용산에 자리를 잡았다. 일본은 전쟁을 핑계로 대한제국 조정을 위협 해 잇따라 한일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을 맺은 뒤 동년 8월 이 일대 300만 평을 군용지로 강제 수용했다. 1906년 4월 본격 공사에 들어가 용 산기지에는 각종 군사시설이 속속 들어섰으며, 1915년부터는 2개 사단이 주둔하며 대륙 침략 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광복을 맞았으나 용 산은 여전히 금단의 땅이었다. 일본군의 무장해 제를 위해 그해 9월 8일 서울에 진주한 미군은 용산기지를 넘겨받아 쓰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단계적으로 철수한다. 그러나 이듬해 6·25전쟁이 터져 미군이 유엔군의 일원 으로 참전하며 다시 눌러 앉게 되고, 1952년 정 부는 용산기지를 정식으로 미국에 공여해 오늘 에 이르고 있다.


   

 

본사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96파크뷰타워 208호 (사)21c안보전략연구원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아 02284 / 발행인 : 박정하

정기간행물등록번호 :서울라10600 / 대표전화 : 02-6953-0031, 02-2278-5846
팩스 : 02-6953-0042, 02-784-2186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정하

군사저널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새소식

Copyright ⓒ군사저널. All rights reserved.